손자병법40 - 한국을 구해낼 생이지지의 눈


많은 것을 공부하여 아는 것을 옛날의 공자는 『학이지지學而知之』라고 하였습니다. 『학이지지』는 곧 학습을 통해 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학이지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바로 지식입니다.

반면에 공부하고 배우는 자신을 뛰어넘어 생명력을 통해 세상을 직접 아는 것을 옛날의 공자는 『생이지지生而知之』라고 하였습니다. 『생이지지』는 이렇게 『학이지지』와 달리 스스로 아는 것을 말하며, 이렇게 스스로 아는 사람을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공부를 통해 아는 것은 『지식』, 기감을 통해 있는 현실을 직접 아는 것은 『지혜』인 것입니다. 지식은 주관적으로 내 안에 저장된 『앎』이고, 지혜는 객관적으로 있는 현실이나 작용을 직접 파악하여 아는 『앎』입니다.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규정이나 법法을 어기면 대단히 큰 실수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하여 그 규정을 어겼다면 그때 그 잘못은 별것 아니라고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을 『곤이지지困而知之』라고 합니다. 『곤이지지』는 다시 말해서 스스로 곤경에 처해봐야 안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곤경困境을 통해 아는 것입니다.

한때는 남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평하며 떠들던 국회의원이나 방송인이 끝내는 자신도 그와 같은 처지에 놓였을 때,

그들이 배우고 느끼는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곤이지지』입니다.

요즘 이렇게 세상을 발칵 뒤집듯이 문제를 일으킨 국회의원과 방송인이 같은 성씨라 하여 『손남손녀』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나도 20대까지는 『학이지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는 것은 한편으론 이해가 되고 설명이 되지만, 그 설명으로 다른 것을 설명하려 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추운 겨울에 머리를 찬물에 담그고 흔들며 답답한 심정을 뚫어보려고 하였습니다. 마음 안에는 항상 『뭐가 뭔지』를 알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그러다 답답한 심정이 괴로워 지쳐서 간이침대에 누웠을 때, 눈앞의 백열등이 『퍽』 하며 터지며, 나는 나의 『생명 에너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기 에너지가 백열등을 밝혔듯이 생명 에너지가 나의 생각을 일으키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때 내 나이는 한국 나이로 29세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내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공부를 통해 아는 지식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식이 걸림돌이 되어 헤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력을 통해 우주의 흐름을 아는 것을 옛날의 석가는 『혜안慧眼』이라고 했으며, 나는 이것을 『현시안現視眼』이라고 합니다. 생명력을 통해 있는 현실을 바로 본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을 옛날의 공자는 『생이지지』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내 말을 듣고 『시원하다』는 통쾌감이 든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학이지지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말이 이해가 안 되고 믿을 수 없다면 그것은 아직도 학이지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학습을 통해 배운 지식에 머물러 있게 되면 그것이 바로 답인 줄 알고 요지부동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는 지식으로는 결코 『우주』의 이치를 알 수 없습니다. 학습은 단지 우주의 이치를 배울 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이지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이런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보고 배우는 학습은 일단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로, 그렇게 보고 들은 세계 안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정확하고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한 부분일 뿐, 그 정확한 이론을 다른 곳에 놓고 해석하면 해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햇빛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입자이지만 그것이 멀리 퍼져나갈 때는 입자가 아니라 파동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자』라는 사실을 알면 그것이 왜 퍼져나가는지 알 수 없고, 『파동』이라는 사실을 알면 왜 우리 눈에 보이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코끼리의 코가 물렁하다고 아는 사람은 코끼리의 상아가 왜 딱딱한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생이지지로 알면, 빛이 바로 『아프락사스Abraxas』로 입자와 파동이 서로 다른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코끼리 역시 말랑한 부분도 있고 딱딱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생명력을 통해 있는 자체를 바로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학습은 수동적으로 배워서 알지만, 현시안은 능동적으로 에너지가 직접 살펴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은 답을 통해 의문점이 생기고, 지혜는 있는 사실을 직접 느껴 아는 『답答』인 것입니다.

이 말은, 지혜가 오리지날Original이라면, 지식은 이미테이션imitation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는 현시안을 통해 직접 보는 팩트fact지만, 지식은 자의식이 가공한 이미지image일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생이지지는 시원하게 느껴지지만 학이지지는 어딘가 모르게 답답한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이와 같은 지식을 알음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알음알이는 그 알음알이로부터 많은 의혹이 생겨,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알음알이로부터의 자유, 그것이 바로 지혜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이지지』가 문제라면, 『생이지지』는 답答입니다.

학이지지는 알고 있는 『나』가 문제지만, 생이지지는 눈앞의 현실이 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생이지지를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사실을 학이지지가 알아야 하는데, 학이지지는 이와 같은 사실을 몰라 알고 있는 자신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이지지는 문제, 생이지지는 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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