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그 놈은 무슨 경인가


옛날에 도응 선사라는 선승이 있었다.

어떤 중이 방안에서 경을 읽고 있었는데, 선사가 창 밖을 지나다가 그 소리를 듣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대가 읽고 있는 경은 무슨 경인가?”

방안에서 경을 읽고 있던 중이 대답했다.

“유마경(維摩經)입니다.”

“유마경을 물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 놈은 무슨 경인가?”

그 때 그 중이 퍼뜩 깨달았다.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마음’이라고 할 때, 생각하는 기능, 기분이나 감정, 욕망이나 갈등이 생겨나는 세계, 이러한 것을 마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실체가 아닌 하나의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기차!” 하고 말할 때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차가 있다면, 그것은 실제의 기차가 아닙니다. 기차는 저 밖에, 들판을 가로지르며 선로 위를 달리는 그것이 기차입니다. 여러분은 기차를 경험합니다. 그 경험의 그림자는 바로 여러분 머릿속의 기차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기차는 기차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기차, 그것이 기차인 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림자를 실체로 잘못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림자의 세계가 사실인 양 거기에 묻혀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절묘한 말일지라도 본체의 세계를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단지 감각적으로 느껴진 그 이미지에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 번민, 방황, 행복감, 이러한 모든 것은 바로 그림자의 세계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러한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바로 자기의 본체를 터득하는 것입니다.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물방울이 튀어 올라옵니다. 우리는 튀어 올라오는 물방울이 자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나’는, 튀어 올라오는 물방울이 아니라 물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것을 엄격하게 구분해 말하기를, 튀어 올라오는 물방울을 ‘아함카라(Ahamkara)’라고 했고, 호수의 물을 ‘아트만(Atman)’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 그러한 것이 존재합니다. 동물과 식물에도 그것은 존재합니다. 우리의 마음 바탕에 아트만이 있듯이, 목련나무에도 생명 그 자체의 아트만이 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것을 다시 이름 붙여서 ‘브라만(Brahman)’이라고 했습니다.

브라만과 아트만은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것, 그것은 곧 아트만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아트만과 브라만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이 조금 전에 머릿속에서 떠올렸던 기차와 같이, 책을 읽고 있던 이 승려는 선사의 갑작스런 질문에 “유마경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원래 책만큼 그림자가 많은 것도 드뭅니다. 특히 철학 책 같은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은 온통 그림자입니다. 그 승려도 책을 읽고 있었고, 그림자의 숲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선사가 “기차!” 하고 물었기 때문에 엉겁결에 “기차!” 하고 대답했습니다.

도응 선사가 물었던 것은 책 제목이 아니었습니다. 이 녀석이 그림자의 세계에 살고 있는가, 실제의 세계에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찔러보았던 것입니다.

“유마경을 물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 놈은 무슨 경인가?”

그 때 그 중이 퍼뜩 깨달았다.

언어로 이루어진 관념적인 세계로서의 유마경이 아니라, 자신의 관념이 작용되고 있는 본체의 세계로서의 유마경을 직관하는 순간, 그 승려는 물방울의 세계로부터 물의 세계를 터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옛날 선사들의 전등록 이야기는 모두 이와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본체의 빛을 전해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본체와, 작용되는 자기의 세계, 그 경계를 분명하게 찔러 말해줌으로써, 그를 통해 그 사람의 정신을 본체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빛의 세계를 느끼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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